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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민족의 전쟁… 평화의 길은 ‘예수 정신’에 있다

  • Writer: Moon Kwon
    Moon Kwon
  • 23 hours ago
  • 3 min read
정의를 빙자한 폭력은 기독교의 기본 정신이 아니다.
정의를 빙자한 폭력은 기독교의 기본 정신이 아니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1962년 여름 성지순례를 떠났다. 현지엔 우리나라 영사관이 없었고 국제적 분규도 계속되는 중동 지역이어서 불안한 마음이었다. 그래도 요르단 왕국과 이스라엘 지역 성지를 찾아 여러 날을 둘러보았다. 여정을 끝내고 돌아오면서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나는 공산주의는 100년을 가기 어려워도 이 지역 종교 분규와 전쟁은 300년은 더 계속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또 하나는 이 지역에 기독교가 거의 없으므로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성지도 존재하지 않겠다는 결론이었다. 그다음부터 나는 ‘예수님의 고향에 다녀왔다’는 개념으로 대신하고 있다.


본래 기독교는 공간적인 자연 신앙이 아니다. 시간과 역사적인 신앙이다. 예수는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요 4:21)고 가르쳤다. 다른 종교들은 성지를 중요시하는 공간신앙을 견지하고 있으나 기독교는 이처럼 성지가 없다. 소위 성지란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 공간일 뿐이다. 기독교는 그 공간에서 주님이 함께하셨던 시간을 찾아가는 역사적 신앙이다. 자연 공간과 역사의 시간은 차원이 다르다. 신앙적 현재는 하나님의 뜻이 함께하는 삶과 역사적 현재이기 때문이다.


그 땅에 기독교가 없으면 무엇이 있었는가. 그리스정교회 성직자들이 예수의 고향에서 기념할 곳을 찾아 안내하고 때가 되면 기념행사를 하면서 유지했을 뿐이다. 그 대신 이 지역에는 알라와 코란을 신봉하는 이슬람교와 구약만 믿고 기독교를 거부하는 유대교가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되는 인간애의 신앙이 없다. 그들의 생활 가운데서는 인류 전체를 위한 사랑의 신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슬람 신앙은 알라를 위해서는 인간이 죄악을 범해도 마땅하다고 믿는다. 그들에게 성지순례(하지)는 신앙의 필수 조건이다. 유대교를 믿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독교를 거부하고 정의를 신앙으로 삼는다. 그들은 정의와 민족을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한다는 구약을 따르고 있다.


이 같은 두 종교의 신앙이 남아 있는 기간에는 갈등과 모순, 전쟁까지도 배제하지 않는다. 그 두 축을 이루고 있는 국가가 이란과 이스라엘이다. 두 국가는 언젠가 전쟁으로 승리하는 민족과 국가가 지배할 것이라는 사상이 종교적 의무와 함께 깔려 있다. 그들의 종교적 신앙이 지속하는 한 갈등과 모순이 지속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그렇게 수백 년간 살아왔다.


그런데 왜 지금 미국과 이란이 전쟁을 하는가. 종교적 측면에서 본다면 기독교 내부에 구약을 믿는 이스라엘과 역사의식을 같이하는 기독교 보수층 일부가 트럼프 행정부에 잠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믿는 시오니즘과 유대인들이 희망하는 신앙에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나 같은 제3자도 기독교를 믿으면서 언젠가는 이스라엘 민족이 중동 지역에서 새로운 다윗과 솔로몬 같은 왕국을 재건하리라는 암시를 받고 자랐다. 그런 기독교와 유대교의 공통된 희망을 품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베냐민 네타냐후이고 트럼프와 주변의 열성적 신앙인들도 같은 뜻을 품고 있다.


그렇기에 미국의 다수 기독교인과 미국 이외의 다른 나라 기독교인들이 트럼프의 신앙에 동조하지 않는다. 트럼프는 지난 3월 자기 신앙적 양심을 위해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아들 목사가 지난해 10월 자신에게 보낸 편지를 자랑삼아 소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는 기독 교회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 2세가 부친의 뒤를 이어 신앙부흥 대회를 캐나다에서 개최하려고 했을 때 캐나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반대했다.


트럼프를 미국의 대통령으로 추대했고 집권하도록 했는데 그런 신앙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 2세는 노르웨이에서도 같은 집회를 시도했으나 거절당했다.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로마가톨릭 교황에 선출된 레오 14세까지 미국의 이란 전쟁을 반대하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주관하는 미국 건국 250주년 축전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신앙적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선포였다. 기독교는 정치 권력이나 경제력을 앞세워 세계 질서를 짓밟는 사태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신약성경, 즉 예수의 정신을 강조한다. 정의를 빙자한 폭력은 기독교의 기본 정신이 아니다.


이런 문제에 대한 정치적 견해와 종교적 신념의 차이는 또 다른 차원에 속한다. 그러나 이런 종교적 신앙이 지속하는 한 종교 사회를 대표하는 중동 분규와 전투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인도에서는 이슬람 모스크에 안치돼 있던 무함마드의 머리카락이 도난당했고 이는 힌두교도의 소행이라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종교 분쟁이 일어났다. 600명의 목숨이 희생된 사건도 있었다.


공산주의자들은 초창기 카를 마르크스와 블라디미르 레닌의 사상이 정치·경제적 신념이 돼야 한다고 강요했다. 그러나 100년을 가지 못했다. 종교적 편견이 해소되기 위해서는 이보다 더 긴 세월이 소요된다는 현실을 가벼이 보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해결책은 있다. 정의는 인간애의 전제 조건이다. 이성과 양심에 따르는 진리와 진실, 인간애의 선과 가치를 위한 노력이 종교적 신념과 일치돼야 한다는 점이다. 코란의 정의를 위한 절대적 가치관과 구약과 민족주의를 우선하는 정의가 인간애의 가치에 흡수, 완성될 때 진정한 자유와 평화는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일보 / 국민일보(ww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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