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16> 원우현 온누리교회 사역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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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n 1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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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국제대학 제자들과 함께
원우현 박사는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온누리교회 사역장로, 몽골국제대학교 부 총장겸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 그리고 그의이름앞에는 수많은 단체 장의 직함이 붙지만 그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직함은 75세에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은 몽골 선교사다.
<역경의 열매 16 > 원우현 온누리교회 사역장로
미디어학부와국제언론연구원개설기념국제심포지엄
몽골에파견되어서하늘의지상명령을어떻게감당할수있을지를염려하던나에게, 2016년 9월 2일의개원축하국제심포지엄은하나님의계획이얼마나치밀하고정확하신지를보여주고몽골사회에존재감을알리는기회였다.
몽골국제대학원메인홀연단에는당시 KBS 이사장이인호박사를비롯한한국과미국에서방문한언론학자와몽골언론학자들, 그리고몽골미디어계고위층정치인들이자리를했다.
권오문총장의인사말후세미나개회를선언하는개회사를원우현원장이했다. 그당시국제언론연구원원장과부총장의자격으로실질적인주관자였기때문이다. 개회사에이어서국내외저명인사들의축사가이어졌다. 오송몽골대사와몽골한인회회장은물론 B. Galaarid 몽골언론인연합회회장(Mongolian Confederation of Journalists)이축사를했다.
몽골국제대학은열악한재정으로캠퍼스를건립하면서도본관메인홀은아담하고푸근한기독선교대학의분위기가있는장소로잘꾸몄다. 대부분 MIU 행사가열리는곳인데그날도바로메인홀에서개원기념심포지엄이열렸다.
영어로진행된기조연설과네편의논문이발표됐다. 발표자의명성이나발표문의수준이신설된미디어학부와국제언론연구원이지향하는미래를 몽골교육계에홍보하기에충분했다.
그날심포지엄이함의하는의의를요약하면다음과같다.
첫째로한국언론학교육현황을한국언론학자가분석했다. 그리고몽골언론학자는몽골언론의특징을발표했다. 급변하는언론환경에새로탄생한미디어학부와국제언론연구원을비롯한몽골언론계가앞으로어떻게대응해나갈지에대한해법을모색했다.
둘째는몽골언론계에인터넷미디어가유행되면몽골의전통미디어인신문방송통신분야가어떻게대응하면서대책을마련할것인가라는새로운숙제를풀어나갔다.
셋째는몽골교육기관전체가국가정책기조를어떻게혁신할것인가에대한해답을거시적으로접근해나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한국과미국과몽골에서교육자와언론학자와언론인, 정부관리들이모처럼한자리에모여국제적으로전문지식과정보를자유롭게교환하며친선을도모하는공론의장을마련한점이그역사적의의를더해주었다.
원우현부총장의개회사에이어이인호 KBS 이사장님이 ‘국가건설과미디어’라는주제로청중이큰감명을받은기조연설을했다. 이인호박사는개인적으로는 100세노모의급환과 KBS 이사장직으로경황이없으신와중에도참석하여학술논문같은명연설문을능숙하게전달해주셨다. 격조높은영어로미디어의사명을제시하면서몽골사회에도전을주면서지성인의메시지로몽골청중을사로잡았다.
한국측에서는, 원우현원장과이창근교수가 ‘미디어교육의최근경향과신설된 MIU MC 학부의교육과정방향’이란주제로, 몽골저명교수인 M.Munkhmandakh(뭉크만다) 박사가 ‘몽골미디어저널리즘의현환과특성’이란주제로, 미국 Syracuse대임준수교수는 ‘The Impact of Digital Social Media on the Media Industry’를주제로각각논문을발표했다.
몽골측에서는몽골국립대학저널리즘학과 Dr.M.Zulkaphil 교수가 ‘몽골저널리즘교육의경향과쟁점’이람주제로, MIU MC 학과에그당시조교수로부임한미USC 영화미디어박사인조은선박사가 ‘Korean Television Drama Jewel in the Palace and Hallyu’란논문을각각발표했다.
나는주님께깊이감사하면서폐회사를했다. 7분가량의폐회사를영어로마무리하면서모든게하나님의은혜요, 사랑하는이웃의협력때문이라는걸잊을수없었다. 특히고촌장학재단이사황규승명예교수, 온누리교회의이재훈목사와윤영섭장로, 그리고김영대회장등의얼굴이떠올랐다.
“보라, 내가새일을행하리니이제나타낼것이라. 너희가그것을알지못하겠느냐반드시내가광야에길을사막에강을내리니”(이사야 43:19)
<역경의열매 17>
자이승에나타난활쏘는어린예수
온누리교회에서사역장로가 70세후에장기전문인선교실행에착수를하는경우는 75세의원우현장로가최초란다. 수석부목사님이몽골로떠나기전에교회정기예배때인사드릴시간을마련했다고연락을주셨지만나는극구사양하고교인들앞에서지않고조용히선교일정을시작했다. 다만선교총괄담당 K목사가심의위원회에선교비전을얘기하라고해서인사말을전했던기억이난다.
나중에 MIU에도온누리교회소속전문선교사부부가봉직하고있고두란노선교란단체와선교사들이이미활동하고있다는걸알게되었다. 그런데도 K목사는행정총괄로서늙은선교사에게편의를제공하고선교의띠를연결할수있도록하는그어떤소개나조치를하지않는것에대한서운함이살짝고개를들었다. 그러나감사하게도주님께서는인간의힘이아니라오직성령께서소개하는몽골인을통하여교회를만나게해주시려고기획하고계셨다는것을발견하게되었다.
누구든지선교를쉽게하려면그지역한인회라든지먼저온선교사의소개라든지내가사회적자산처럼확보한기존의사회적관계를바탕으로해야한다. 그래야현지인을접촉하여야말도쉽게건널수있고선교도할수있는게보통이다. 그런데내가부총장인몽골국제대학의일과는 20년이상몽골에적응해온선교대학으로서짜인틀속에내기능만맞추어나가야하는보이지않는제약도적지않았다. 그래도 “이나이에여기까지왔는데하나님이보내신몽골현지인을만나서몽골인들의개척교회에뛰어들어가기독교인이극소수인몽골땅에서영혼구원을하게해주십시오.”라는외로운기도는멈추지않았다. 주님은나의작은소망보다훨씬풍성한은혜를베풀어주셨다.
내가몽골에 3년근무하는동안몽골인들만모이는미세하고부족하지만게르개척교회에참여할기회를주시고십자가보혈의능력을설파할기회를허락해주셨다. 즉계시록교회, 아멘축복교회, 믿음의길교회를잉태하고지탱하는일을돕게하셨다. 하나님은이작은교회를통해몽골선교에빛과소금의역할을하게변함없이신실하신사랑의빛을비춰주셨다.
그중할리웅목사님이담임하시는아멘축복교회에서경험한나의몽골에서의첫부활절때의일을소개하고자한다. 자이승야외예배중구름가운데두둥실떠있는 ‘활쏘는예수님’의명료한모습이나타난기이한사건에관한설명이다.
아멘축복교회는그해부활절예배를 100여계단을오르면전승기념탑이보이는관광지에서드렸다. 이자이승전승기념탑은몽골이러시아와연합하여일본에승리한전쟁을기리는역사적인관광지다. 아침에비가내리고초행길이라나로서는찾아가기가불편했다. 고비사막등춥고건조한지역에서생활하는몽고골인들은비가내리면우산을쓰지않고그냥비를즐기며하늘의축복을누리는관습도있다고한다. 하지만그날은자이승계단을하나하나오르는데바람이어찌세찬지신도들은서로붙들고머리카락을휘날리면서겨우올라갈정도였다. 아이스크림선물소식에몰려온어린아이들이어른을앞서면서신바람나게속력을내며거뜬히먼저계단을올라갔다. 그사이신기하게도비는멈추고모든교인이아이들과함께부활절예배를올렸다. “예수부활했으니, 할렐루야!” 찬송과기도가드려지고말씀이선포되었다. 할리웅목사님의뜻을따라서성도들이함께자리를옮겼다. 울란바토르시내가한눈에내려다보였다. 성도들은몽골민족의구원과울란바타르에세워진교회의부흥을위해통성기도를하면서울부짖었다. 나는바람에흔들리는몸을억지로가누면서바람에날아가는소리를제대로살리려고더크게목청을돋우었다. 울란바타르사회에만연한잡신이다떠나가기를기도했다. 산위에서의통성기도로성령의바람이집집마다몽골사람한사람씩찾아가정결케하길간구하였다.
우리가통성기도에몰두하고있는그순간한교인이신기한장면이하늘에나타난것을스마트폰으로찍었다며감격해서뛰어왔다. 사진에는영화로운천국백성과어린양예수님의모습을한구름이담겨있었다. 모두가이사진속구름으로나타난신기한형상을보고제각기한마디씩하였다. 합창이나하듯이몽골성도들은 “어린아이가활을쏘는모습같다.”고했다. 몽골에서활은전쟁을승리로이끄는강력한무기로여겨져왔다. 다시영상에집중해자세히보니어린양예수님이활을겨누고있는자세가더욱뚜렷했다.
나는그다음주일예배때그사진을확대인화하여모든성도들에게배포하고간증했다. “우리의통성기도응답으로부활하신예수님이제자들에게몸소보여주셨듯이우리에게보여주신주님의언약의징표였습니다. 천국엔어린이마음으로만들어갈수있습니다. 어린예수가천국을가리키듯정조준하신화살은그순간이미천국에들어간것입니다. 성부하나님은예수님의십자가죽으심을통해우리죄를씻어주셨지요.
여러몽골성도여러분도이아멘축복교회의예배에참여하여성경말씀을믿고주님께순종하면천국을통과하는축복의은혜가매사에넘치실것이라믿습니다.”
“예수께서이르시되나는부활이요생명이니나를믿는자는죽어도살겠고무릇살아서나를믿는자는영원히죽지아니하리니이것을네가믿느냐” (요한복음 11: 25~26)
<역경의열매 18>원우현 온누리교회 사역장로
김일성대학신문학과 61년졸업생과의대화
아멘축복교회는그렇게 ‘신비한활쏘는어린예수’ 사진을보여주며예수님이시작하신교회다. 바로그교회의할리웅여목사님은동독의방직공장에선발되어외국문물을접해본여성이다. 한국선교사를만나예수님을탐구하다가목사안수까지받았다. 언어능력과지혜를모친께물려받아서한국어, 중국어를보통이상으로구사한다. 세자매의맏이로제일총명했으며두여동생은몽골관광사업을운영하여부유한편이다. 유물사상을신봉하는어머니오윤체츠크여사에게는할리웅목사가마음에큰짐이아닐수없다고한다. 사상적으로도다를뿐아니라, 몽골국영방송 40년경력의대기자인오윤체츠크여사집에서할리웅목사가 10살아들과함께더부살이를하고있으니더욱그럴것이다.
어느날나는빈민구제바자회를끝내고할리웅목사님과같은버스를탔다. 여목사님짐이너무많아집에까지들어주게되었다. 짐을들고아파트를들어서니영국고전풍의서양식의상을한그어머니가안방에앉아계셨다. 바로이멋진전문인풍의세련된미인이몽골방송계에잘알려진모친이시다. 그순간나는오히려온집안이어두운기운으로꽉차있어서숨이막히고코를찌르는영적인악취를체감했다.
“어머니, 이분이대한민국에서오신원우현장로이십니다. 저의아멘축복교회를도와주면서장로역할을감당해주셔서하늘이보낸분같아요. 오늘도빈민구제바자를후원해주셨지요. 제가짐이많아서들어주시려고집에까지들르게됐습니다.” 할리웅목사의소개에평양사람의말투와자태를그대로보이면서오윤체츠크여사가인사를했다. “그렇게잘도와주시니감사합니다. 남조선에서오셨다고요? 반갑습니다. 몽골에는왜, 어디서, 무엇을하러오셨습니까?”
“원우현장로입니다. MIU에서신문방송을가르칩니다. 불쑥들러서아무런선물도못가져왔는데예수님을믿는교인들은기도로하늘의선물을전하는예법을존중합니다.” 대답하고모친이거절할틈도없이과감히머리에손을얹고통성기도를시작했다. “예수님의보혈로오랫동안이집에둥지를튼모친의주체사상과유물사관같은어둠의영은떠나갈지어다. 세상권세로짓눌린할리웅목사님의영권을회복하여주십시오. 이집안에예수님이주인되게하시고하늘의사랑이넘치도록채워주시옵소서.”
기습적으로손을얹고한국말로소리를내서기도를하고나니모친은부동자세로순간적으로숙연해지면서, “무슨선물을머리에다주십니까?”하고웃는얼굴로딸목사에게원장로가지금무슨말씀을했는지궁금하다는표정을보였다. 할리웅목사의통역을다들으시더니나는오직따님이못살고고생하는게늘안타깝고가슴이아프다고실토를하셨다. 교회생활을마땅치않게여겨오면서여목사님의사상적일탈을질타해오던몽골의앵커로서인기가높은오윤체츠크여사로는당연하고솔직한고백이었다. 나중에친근해진후들었지만그녀는북한고아들이몽골로피난을왔을때몽골에서돌보던대표적인물이었다. 여사는북한의선발과정을거쳐몽골인으로는최초로 1961년김일성대학신문학과에입학하였다. 주체사상을신봉하면서공산주의언론관으로선전선동에세뇌된북한식엘리트중엘리트였다. 김일성대학에서도특출해서졸업후북조선몽골대사관에근무할정도였다. 북조선–몽골김일성방문때동행했으며한국노태우정부때몽골대통령이한국방문시에도대표단의일원이었다. 북한의풍물이생활속에녹아있는김일성수령의신봉자였다. 평양말투는물론자태는평양인기배우를만난기분이들정도였다.
나는 75세나이로몽골선교지로떠나기전, 세상의좋은것을다내려놓으려애썼다. 특수교육을대신해서선교에관련된서적을두루섭렵하려했던기억을떠올렸다. 그중특히선교대상자마다가장잘하고즐거워하는장기를자랑할수있도록광장을마련하는게물고기를물로인도하듯이유용한선교접근법이라는생각이났다.
“오윤체츠크여사님, 오늘실례도많이했습니다. 부탁말씀한가지드리고싶습니다. 제가이번학기 MIU에서 ‘미디어이론’ 과목을강의중입니다. 전부몽골학생들인데 ‘몽골미디어환경과생태의과거와현재와미래’에관해서저는도대체아는바가없으니40여년몽골국영방송(MNB)의체험담을후학들에게들려주시길간절히바랍니다.”
“아주좋은제안이십니다. 원교수님을위해서라기보다도몽골미디어의장래를위해서내가한번나서야겠습니다.”
“우리의싸우는병기는육체에속한것이아니요오직하나님앞에서견고한진을파하는강력이라.” (고린도후서 10:4)
<역경의열매 19>
한국언론법학회창립
한국언론법학회는 2002년 5월창립되어서지난 21년간지속적으로발전하고국내외에서신뢰받는학회로확고히자리를잡았다. 언론학분야와법학분야의일부로여겨오던언론법을잡종강세의 ‘멘델의법칙’ 대로서로다른분야를교집합하면학문적으로나사회기여도면에서상승의효과가기대된다는비전을실천해온셈이다.
인터넷시대로급변하면서언론과미디어의연구대상이확산되어서언론학이나법학의변방에서미진한연구자들의개인적인학문적자각과열망만으로는전혀감당할수없었다. 미디어생태계는양적인변화를넘어서질적인혁명의시대를맞이했기때문이다. 대망의 2000년대를점치고예측하는사회과학의세미나주제가범람하고있을때나도미국 Ohio Arcunum의 Wind of Chapel을현지답사하면서미래비전에대해고민했던기억이난다.
한국언론법학회의영어명칭은 KLEP(Korean Society for Media Law, Ethics and Policy)이다. 명칭이시사하듯이본학회는미디어법, 미디어윤리, 미디어정책을기본적인세축으로상호의존적으로연구하면서언론법의독립영역을구축하려고기획했다. 그러나본학회가 21년동안쌓아온궤적을뒤돌아서살펴보면누구의특별한의지때문이아니라미디어생태계의자연스러운적자생존의순리에따라서언론정책분야연구와언론윤리분야연구는거의쇠퇴했다. 반면에언론학자와법학자들의연구와상호교류는유독생기를띠고있고본학회가국내외정상의지위를지속하고있음을밝혀둔다. 그결과 Korean Society for Media Law인한국언론법학회가명실상부한본학회명칭으로불리고있다.
본인이초대회장으로사단법인으로등록하여사회적연구기관으로정착했다. 그전에물론창립준비를위하여원우현, 김진홍, 유일상, 박지동등언론학자들이언론법학회는학문연구뿐아니라수용자주권시대에부응하는언론자유실천을하자는데뜻을모으고적극적으로창립에나섰다. 그후 2002년 2월 8일언론법학회창립선언문을공포하였다. 즉 “진정한언론의자유창달과언론민주화의구현, 언론문화발전과수용자주권의확대를위해서새로운언론법학회를창립한다.”는창립취지를언론과사회각분야에전파하였다.
사단법인등록절차로서언론법분야의저명학자를발기인으로권유하는일을내가초대회장으로서열심히노력한결과각분야유명인사들이대거참여하는큰성과를얻었다. 언론학자, 법학자뿐아니라정책학, 윤리학전공학자도참여하여 KLEP 다운면모를일시에갖춘셈이다.
언론학계에선원우현, 김진홍, 유일상, 박지동, 이구현, 이창근, 김영석교수가, 법학계에선박용상, 권영설, 성낙인, 한위수, 박선영, 이인호, 양삼승, 안상운, 김성수, 이재상, 성문용교수가, 윤리학정책학분야는김득중, 김상배, 정정길, 이성백교수가발기인으로동참하였다.
“한사람으로서는당해낼수없는공격도두사람이면능히막아낼수있으니삼겹줄은쉽게끊어지지않는다.” (전도서 4:12)
<역경의열매 20>
철우언론법상학술상과올해의판결

2022년 8월 11일제21회철우언론법상인터넷심사를참여하였다. 심사과정이면대면이아니라어색했지만신기하고재미있었다. 수상자가정해지면기념세미나를수상작을주제로개최하는것이 21년전통이다. 2022년에도 8월 26일프레스센터 19층기자회견장에서철우언론법상시상식과기념학술세미나가개최될예정이며, 주제1, ‘사실적시명예훼손죄위헌여부’와주제2, ‘명예훼손에서사실과의견의구별’이정해지고이에상응하는사회자발표자토론자가미리공지되었다.
초기엔기금도미약하고철우상의사회적명성도미미하여상금대신각신문방송에게재되도록노력하고, 기념세미나를통해최신법적쟁점을앞서진단하여학계와사회에이목을집중시킨다는데각회장단마다총체적인의지를보여연륜을쌓아왔다.
올해는정재황심사위원장의면밀하고정확한심사위원회사회에모두편하게관례에따라서심사절차를밟아갔다. 라테호스. 나는최고령자로그간심사준칙이된공정절차를발언으로재확인시켰다. 즉초대심사위원장고권영성서울대명예교수님의한치도양보없는엄격한심사의본질, 즉언제나대상논문이나저서를누가썼든지전공나이그동안업적은전혀고려하지않고그논문과저서나판례가언론법연구발전에얼마나기여했는지에대해그내용만심사한다는것이다. 최종심사후보가우열을가리기어려운심사단계에서는작품의주인공의배경을참고해서투표할뿐이었다. 치열한토론은권장하면서매단계마다무기명비밀투표로다수결이나 2/3의결로했다. 그기록을남기는규례가 21회인터넷심사장에도이어지고있는걸나는확인했다.
회고하건대, 2005년제4회수상작은대법관을역임한김재형서울대법학전문대학원교수의 ‘언론에의한인격권침해에대한구제수단’이었다. 언론법만연구하는학자도많은데단편의민법학자에게주는게합당한지이론도있었지만권영성위원장님은저자가정치학자든민법학자든문제가될게전혀없다고결정했다. 철우언론법상은 1~2년내에학문적가치가뛰어난논문이나저서그리고판례에수여할뿐이라는것이었다. 2015년제14회때는우열을가리기어려워서최종심에오른당시김시철부장판사와심석태 SBS 뉴미디어부장에게공동수여를했다. 저서로는 2006년제5회때 ‘언론분쟁과법’ 저자인당시윤재윤서울고법부장판사와함석천춘천지법판사에게수상의영예가돌아갔다. 언론법학계에선그당시생소하던실무자들이어서회자가된기억이난다.
이상의수상을가장큰영광으로여기고수상을언론에홍보할뿐아니라시상식장을가득메우는겸손하고여유로운수상자가있는가하면, 자기부인이나제자들에게도알리지않고썰렁하게수상사실을감추려는듯한학자풍의면모를보이기도했다.
예컨대, 2002년제1회수상자인박용상헌법재판소처장은부인과딸은물론헌법재판소직원들이참석해서만원이었던축하현장을나는아직도기억한다. 2004년제3회엔김옥조교수가‘미디어윤리’로철우상을수상하셨다. 현승종국무총리비서실장시절절대신임을받아현총리가현장까지오셔서축사까지해주셨다. 김교수의서울법대 16회동문들, 동아일보유경연, 서울대최명교수등이름은지금다기억하지못하지만십여명이시상식을끝까지지켰던기억도난다. 2003년제2회수상자박선영교수는한복을차려입은시어머니와부군인민일영대법관등이참석하여가족이경사를기렸다.
특히주위에깊은감동을준수상자는 2019년 18회염규호교수의경우였다. J. Marshall First Amendment Chair Professor인염교수는 AEJMC회장을역임한세계적으로저명한학자다. 그동안 18명수상자다음이내차례인가얼굴을붉히면서사양할수도있는위치였다. 불구하고염교수는 ‘학문적보상중가장영예로운철우상’이라고감사하면서겸손하게내게보내준회신이기억에남는다. 멀리미국에서시상식에참석하여 “철우상이자신의일생에명예로운상입니다.”라고시상소감에서반복하는순간에모든청중이미국대학자의인격과겸손을느끼면서우레같은박수를치던기억도새롭다.
철우상이세계적으로도유일한상으로우뚝설수있는이유는따로있다. 바로대법원판결이나헌법재판소판결중언론관계법적쟁점에관해서한국의언론법이론은물론언론의자유신장에가장크게기여한판결문을 ‘올해의판결’로선정하기때문이다. 벌써시상한지 20년이지났다. 2022년은철우언론법상 20주년을기념하는뜻깊은해이다. 그래서철우언론법상학술상과철우언론법상올해의판결을제1~20회까지집대성하여기념책자를발간하였다. 그중 20회에걸친 ‘올해의판결’ 수상작은한국언론법의특유한판결의흐름을간파할수있을뿐아니라한국고유의언론법이론을재정립하는데긴요한판례자료가될것이라확신한다.
나자신을회고해보아도대학에서 ‘언론법강의’를하는동안한국판례내용은강의에거의없고미국수정헌법제1조를주로얘기했던기억만남는다. 20세기에만연한 ‘사상의자유시장원리’를내세우며표현의자유에대한제한을가급적반대하는미국판례만강의했다. 즉 ‘사전억제이론, 막연하면무효이론, 명백하고도현존하는위험’ 같은미국판례를준거로삼았다. 철우상의 20년간 ‘올해의수상작’이영어로번역까지된다면한국언론법학회의세계적위상은더욱더빛날것이라믿어의심치않는다.
“네시작은미약하였으나네나중은심히창대하리라.” (욥기 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