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12 > 원우현 온누리교회 사역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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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n 1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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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우현 박사는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온누리교회 사역장로, 몽골국제대학교 부 총장겸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 그리고 그의이름앞에는 수많은 단체 장의 직함이 붙지만 그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직함은 75세에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은 몽골 선교사다.원우현 박사는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온누리교회 사역장로, 몽골국제대학교 부 총장겸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 그리고 그의이름앞에는 수많은 단체 장의 직함이 붙지만 그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직함은 75세에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은 몽골 선교사다.
<역경의 열매 12 > 원우현 온누리교회 사역장로
철강왕의 언론상 기금 출연
언론상을 제정하면서 당시 전례 없는 거금을 언론학회가 지원 받은 사연은 이렇다. 회장 당선 후 포항제철 홍보부에 접근하여 언론상 기금을 요청하는 서한을 전달했다. 그 후 서울법대 출신인 이대공 포철 이사님이 관심을 보이면서 시원한 답을 보내왔다. “박태준 회장님을 만날 기회를 잠시 드릴 테니 원우현 회장이 최선을 다해서 설득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박 회장님은 누굴 만나시면 5분 이상 시간을 갖기 않는 분입니다. 그 짧은 시간에 언론상에 대한 기획 및 집행 내용과 언론계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나 예산의 규모나 적정성 등을 어찌 다 설명해 드릴 수 있겠습니까? 회장 어른의 마음을 움직이시겠습니까?” 이어서 “그래도 한 번 만나서 용기를 내 보는 게 최선이 아니겠습니까?”
철강 부국을 이룬 신화의 장본인이신 한국의 철강왕을 대면한다는 것만으로 내 가슴이 벅찼다. 기도하면서 결과야 어떻든지 내심으로 영광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와 대담하면서 박 회장님은 30분이 지나도 자리를 뜨지 않으셨다. 밖에서 기다리던 참모들이 무슨 일인가 의아했다고 했다.
“언론계가 제 구실을 하고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정도로 가려면 어떤 묘안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원회장은요. 언론인을 건드리면 더 삐뚤어지는 속성도 만만치 않은 것 같은데 말입니다. 언론을 비난하고 계도하려 하면 실제로는 반작용만이더커지지않습니까?”
“언론현상을분석하고비평하는역할을하는언론학회에서언론인의실질적이고이상적인언론인상을제시하고그에부응하는롤모델선정하면변화가일어날겁니다. 수상자를롤모델이나이상형으로칭찬하는분위기를만들어가면언론인의식구조도서서히개선되지않겠습니까? 포철이원하는대로그대로는아니겠지만언론계도스스로제자리로돌아가겠지요. 포철이나사회적기업이언론에직접지원하신다면경제적통제로보일수있는부작용도만만치않을겁니다. 회장님. 그대신우리학회에언론상기금을기부하시고언론발전모델을함께고심하면서장기적인안목에서한국언론의탈바꿈을기대해보시는게최선이아니겠습니까? 잘아시다시피, 민주국가에서는언론을제4부라칭합니다. 대통령부터모든권력은국민의선거를통해서만들어집니다. 자유민주주의체제에서는여론에의한통제가필수적인데여론을좌지우지하는언론이국가정체성을확고히갖추어야하지않겠습니까? 회장님. 언론학회의언론상에목적을국민의여론에맞추고심사과정에서우리민족의정체성도기준으로삼을수있을겁니다.”
나의상식적인대화로박회장님이설득되셨다고는볼수없다. 그러나결국 5분을넘어서 30분면담을하는동안한국언론학회언론상을위해일억기금을출연하시기로최종결론을내셨다. 그후수상자부부가유럽여행을하며상금도받는규모가큰상으로선망의대상이되었다.
2차언론상은서울대학교신문대학원창설과한국언론학회부활에중추적역할을한고김규환박사가선정되었다. 한국언론학회본회의장에서의시상식에서언론상을받으러사모님과외아들이참석하셨다. 나는 “두분이수상하시면서 ‘김규환기념장학기금’을조성한다고말씀하시면어떻겠습니까? 고인도기뻐하시고고인의이름도학회와같이하실겁니다.”라고제안했다. 반갑게응답하실줄알았는데난색을표하시면서거북하게생각하시는것같아서나자신이무척당황했던기억도새롭다.
도미후귀국하여인사도못한터라김박사님부고를보고문상을했다. 김윤환제씨등과빈소를계속지켰다. 발인날엔혼자서부친이설립한주학교인 경상북도오상학교교정에안장식까지동승하고귀경했던그날이생각난다. 하늘에서다지켜보시고 “내가원교수본심을세상에서는몰랐네.”하시면서김규환선생님이미소를지으실것같다.
“이것을조심함은우리가맡은이거액의연보에대하여아무도우리를비방하지못하게하려함이니, 이는우리가주앞에서뿐아니라사람앞에서도선한일에조심하려함이라.”(고린도후서 8:21)
<역경의 열매 13>
몽골국제대학의 Media Communication 학과 신설
2016년 2월 추운 겨울, 소격동 이층 식당에서 양유식 장로와 K총장을 처음 대면하였다. 전 국군통합병원자리 옆 골목이고 삼청동에 살 때 익숙한 이웃 동네였다. 양유식 장로가 옆에 앉은 초면인 분을 소개했다. 온누리교회 몽골 예배사역 간사를 하다가 몽골 선교사로 파견된 후 지금은 몽골국제대학(MIU) 총장직을 맡고 있다고.
나는 당시 온누리교회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중심으로 13개 종족 예배를 지원하던 M센터 담당 장로였는데 서로 안면은 익숙지 않았다. 온누리교회가 몽골국제대학의 상법상 주인인 이사장 교회이고 K총장은 행정총괄 책임자인 셈이지만, 15년 이상 혼자 모든 걸 감당하다보니 실질적인 주인인 셈이었다.
K총장이 입을 열었다. "몽골국제대학에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전공 학부(Media and Communication department)신설 허가를 교육부에서 받았습니다. 동시에 중앙아시아와 서방을 연계하는 국제언론미디어국제연구원(International Institute for Media and Communication)의 창설도 추진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MC department나 IIMC는 내가 작명한 것이다. 그는 계속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지금까지 몽골엔 사회주의 이론 배경의 신문방송학과가 여럿 있고 학문적인 전통도 있다. 그러니 서방 개방 후 미국과 서방의 언론을 대처해야 하는데 저널리즘 교육과 이론을 담당할 학과는 전무한 상태입니다. 몽골 정부는 언론분야의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대책으로서 영어로 강의하는 외국인 재단의 MIU에 특별히 허가를 내준 겁니다. Mongolia International University의 전 교육과정은 영어로 하지만 이번 학과와 연구원을 신청해서 인가를 받는 모든 절차도 전부 영어로 준비해서 진행해야 합니다. 학부 4년 교과과정도 최첨단 미국 Journalism School의 자료를 업데이트(update)하는 게 필수 조건입니다."
내 이야기를 좀 하자면, 1998년 11월 장로 장립 이전에 <온누리신문> 편집국장과 <빛과 소금> 대담자로 일한 적이 있다. 봉사 내용보다 사진과 글로 큼직한 홍보 효과를 누렸는데 세상과 구별되어야 할 교회에서 그렇게 한 것이 하나님 앞에 부끄러웠다. 그 후 마음속으로 온누리교회에서 가장 변방이 어딘가 살펴보다가 마침내 외국인 근로자를 전도하는 사역을 하고 있는 M센터가 바로 이방 땅이요 대형교회의 황무지인 걸 깨달았다.
그러나 하늘에서 보면 M센터야말로 선교의 황금 어장이다. 무슬림, 힌두교 등 이교도들이 제 발로 찾아오는 막중한 선교 현장이다. 한편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은 결국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며 본 교회 모임이나 주요 의사 결정을 위한 투표에는 전혀 참여하지 못해서 교회에서의 깊은 교제 영역에서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외국인 근로자들과 함께 예배하고 전도하려면 각 나라 현장을 답사하고 단기 선교
여행도 다녀온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선교지 방문을 위한 왕복 항공임 등 비용을 아껴서 현지 선교사를 물질로 후원하고 중보기도로 보이지 않게 돕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자기 고집 때문에, 직접 선교를 위해 해외를 나간 일이 별로 없다는 열등의식도 적이 있는 터였다. 그런데 70세 장로 은퇴 후 5년이 지난 75세의 나이에 한 번도 가본 일이 없는 몽골로 장기 선교를 떠난다는 게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나 말고도 영어 잘하는 언론학 전문가가 서울에 많습니다. 나는 나이도 지났고 몽골을 선교대상국으로는 기도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75세로 외국 생활을 하며 자립할 능력도 감퇴 되었습니다."
그러자 총장직에 능숙해 보이는 젊은 K총장은 다부지게 구체적으로 다그쳤다.
"그 MC 학과장 자리는 별로 높은 자리는 아니지만 조건이 좀 복잡합니다. 첫째로 언론학 영어 강의를 한 경험이 있어야 하고, 둘째로 언론학 분야의 저술과 업적이 있어야 하고, 셋째로 MC 분야의 과장, 원장, 학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행정 경험이 풍부해야 합니다. 넷째로 교회의 교사역자로서 소명이 있어야 하고 영적 소통 능력도 필요합니다. 우리 대학은 연희전문학교 초창기처럼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둔 교육과 선교적 사명을 실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여러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는 전문가는 오직 원우현 박사 장로라는 기도 응답으로 뵈러 온 것입니다."
그날 K총장과 헤어진 후 기도하는 중 주님이 다정한 음성으로 다가오셨다.
"너는 내 것이다. 내가 사자를 보내서 청하는 것을 너는 믿음으로 받아들여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신실하게 최선을 다하라."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시편 37:5)
<역경의열매 14>
75세에떠난몽골선교
몽골국제대학총장이나를선택한이유로제시한사항과내가답해야할사항은너무나명확했다. 하나님의나라를전하는선교의소명을주실때는일획의오차도없이뜻하신구원의역사를펼치신다는것을느끼게하며성령이회오리바람처럼내머리를강타했다.
집에와서 K 총장을통해서제시하는조건과상황을되짚어보니 "바로내가여기있습니다."라는결단을피할핑곗거리를찾을수가없었다. 나에게주어진사회적여건을따지는것보다주님과겸손히이야기해보는것이절실했다. 그후집중적으로일주일이상세상적이해관계를내려놓고십자가를묵상하였다. 몽골의어떤악조건이라도가장낮은자리에서인내하고오래참으며무조건손해를보아도감사하기로했다.
지금은작고하신당시 98세의노모가하루하루아들과며느리의보살핌이필요한형편이셔서서울을오래떠나있을수가없었다. 나는몽골선교를결심하기전에아내와어머님과는진중하게의논하지않고단지주님의목소리를듣고소통하는문제에집중했다.
하나님은내게 30여년대학교수생활로얻은열매를가지고몽골국제대학에가서써먹는세상지식의재활용수준은뛰어넘어야하지않겠느냐고도전해주셨다. 세상의어두운장막에갇혀사는몽골원주민구원을위해서그들보다더낮은자세로동고동락하고순수몽골인교회를개척하면서선교사업을이루는꿈도심어주셨다.
자연히몽골국제대학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신설이나학원선교참여여부는사회적득실을헤아리는선택의문제가아니라성령님이강권하시는실천적결단의순종의문제로변해갔다. 믿음의결단이란자신이통제하려는의지를포기하고그결정을전적으로하나님께맡기는것이다. 세상의셈법은어느새사라지고하나님께전적으로맡기겠다는결론에도달했다. 능력주시는하나님을믿고결단하라고세미한음성으로속삭이는성령님의다그침이느껴졌다.
그러나내가선택한몽골선교사의길은분명좁고험한길이었다. 나약한 75세노인의심리때문인지걱정도많고두려움도엄습했다. 몽골에가본적도없고특별히선교대상으로기도한적도많지않았기때문이다.
그런데아내인이방숙권사가나의무모해보이는의외의선택을존중하면서격려해주었다. 노모인황숙희권사님도 “주님이하시는일에는기꺼이순종하는게복이다. 주님의나라확장을위해선교에전심전력하는동안에는주님이동행하시고지켜주시니이노인은걱정하지말고다녀오너라.”면서환하게웃으셨다.
히브리서 11장 8절말씀처럼아브라함이부르심을받았을때순종하여갈바를알지못하고나아갔듯이몽골에서벌어질생소한환경을상상하고두려워하지말기로하니마음이한결편했다. “이스라엘백성이광야생활을경험했듯이나를불현듯광야로이끌어내시는구나. 나는부족하여도그광야어딘가에오아시스를예비하시고주님의일을성취하려는소망을이루어주시리라.”
그길이무엇인지모르지만순종하고나아가면주님의뜻을분명히알게될것이고하나님이펼치시는무궁무진한미래를체험하게될것이라는믿음이생겼다. 마침내나는몽골로가기로결단했다.
“네길을여호와께맡기라그를의지하면그가이루시고” (시편 37:5)
<역경의열매 15>
다만성령의나타나심과능력으로
학원선교사로몽골국제대학(MIU)에파송이될경우내가구체적으로할일은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신설과국제언론미디어연구원설립이었다. 70대중반의노인이두가지대형과제를학교가원하는대로하되, 무엇보다도그를통해주님의뜻을실현할수있도록나자신을먼저점검하고준비하는게절실했다.
신설미디어학부의경우, 어떤결실이든입학 4년후에야기대할수밖에없다. 미디어학부에서언론학사를배출하기까지 4년의느린걸음이예상되었다. 그동안미디어학문전수성패여부보다는입학생을수업시간마다만나전도하는기회를갖는것이더소중하지않은가? 그래서내가언론학자로서의역할보다는복음을전해영혼을구원하는소명에충실해야겠다는생각이들었다. 한편몽골대학사회와교육기관을대상으로대대적인홍보를하고의미있는메시지를처음부터강하게전할수있는 IIMC 개원기념국제심포지엄을구상해보기로했다.
나는경제상황과재정이빈약한몽골에서는모금을통한기금확보가급선무란걸깨달았다. 그때에 70대중반의원장로가터무니없이몽골선교가려고한다는소문이가까운이웃에는이미돌고있었다. 마침동생인원좌현사장의경기고동창인황규승박사(고려대경영대학장역임)는그런내게측은지심이생기고걱정스러웠던모양이다. 나에게뜻밖의전화를해와 “원장로님그나이에어딜가신다고그러십니까? 그래도대책이라도세우고떠나셔야지요?”하면서자신이이사로있는고촌장학재단에건의했더니주님의은혜로지원금을좀허락받았다며재단사무국장이연락을하면수령해서가라고했다. 미디어학부설립이시동도안걸렸는데하나님은 ‘국제언론연구원개원기념국제심포지엄’의물꼬를터주신다는생각이들었다. 몽골선교를강력하게몰아붙이는듯한희망의파고가나의모든잡념을쓸어버렸다.
사무국장에게연락해서감사인사를하면서지원금수령방법을문의했다. 원우현박사가 MIU Vice President인것을몽골교육부가인증하는서류를첨부하라고했다. 그때 2016년 2월에는말로만초빙여부를양해했을뿐, 확실하게 MIU 교수와부총장그리고국제언론연구원장을내가수락하고 MIU가임용계약서를작성할단계는아니었다. MIU 직분도없이내가그지원금을받으면고촌장학재단도수령자인나도법을위반하게된다면서합당한서류를조속히첨부하라고했다.
이사정을 MIU 권오문총장에게전달했다. MIU에서는 2월말일자로나를부총장으로임명하고증빙서류를보내와신속하게행정지원을마무리했던기억이난다. 원래 2016년 4월부터몽골교육부와접촉해서미디어학부신설절차를시작한후 6월경미디어학부신입생을모집할예정이었는데바로그서류때문에법적으로는 2016년 2월부터 3년 7개월간근무한선교사다. 그러나실질체류기간은 3년 5개월로조금차이가난다.
2016년 4월몽골에도착하기전에 MC 학부와 IIMC 설립초안참고자료를국내외에수소문해서수집하였다. 미디어학부수업에필요한커리큘럼과내가담당할수업시간에사용할교과서도미리준비를해야했다. 그당시미국저널리즘학부에서가장인기있는여러교과서를미국교수제자나지인을통해서구했다. 물론미국교과서나커리큘럼은몽골학생들의학문적배경에맞게조정했다.
주님께서언론학부에인재들을보내주시고그들이몽골땅에사랑을전하는언론계의파수꾼이되도록해달라고기도했다. 그리고미디어학부신입생들은그누구든지나의선교기술이아니라, 성령의감동으로천국백성이되게해달라고기도했다.
“내말과내전도함이설득력있는지혜의말로아니하고다만성령의나타나심과능력으로하여”(고린도전서 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