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그들의 은혜를 잊으랴
- Admin
- Jul 1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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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그들의 은혜를 잊으랴

5
월에 접어 들자
,
주위가 녹색으로 변해 가고 상쾌한 기온이 계속되니
,
각 사회단체에서는 각종 모임을 앞 다투어 마련하고
,
여기저기서 초청하는 행사들이 봇물처럼 터졌다
.
“
효행상 시상 및 문화 축제
”,
“
걷기 대회 및 음악회
”,
“
메모리얼 데이 시가 행진
”,
“
참전용사 보은 만찬회
”,
골프
,
등산
,
야유회 등
,
그 외에도
,
개인적으로 어머니 날
,
아버지 날까지 겹쳐
,
5
월 한 달이 바쁘게 훌쩍 지나갔다
.
그 중
,
보훈에 관련된 행사에 참여하다 보니
, 62
년 전 우리민족이 겪었던
6.25
골육상잔의 참상을 다시 회상하며 많은 상념에 젖게 했다
.
그 당시
,
초등학교
6
학년 어린 시절이라
,
군대에 끌려 가지는 않았지만 적 치하
3
개월 동안 서울에서 북한 공산당의 억압 통치를 직접 목격 하였고
,
전쟁의 무서움과 참상을 온 몸으로 체험했다
.
오죽
,
적 치하의 압제가 싫었으면 중공군이 서울에 재 입성하기 직전
,
그 당시 서울 시민의
90%
이상이
,
매서운 추위를 무릅쓰고 남부 여대로 피난길에 나서
,
고난의 행렬이 끝 없이 이어졌다
.
파괴된 다리 철 난간에 파리 떼처럼 달라 붙어 기어서 도강 하거나
.
열차 지붕에 빼곡히 올라 타 서로 껴안고 또는 옆에 다닥다닥 매달려 서울을 탈출했다
.
자유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죽음의 탈출 이었다
.
서울시내는 인적은 거의 없고 집에서 기르던 가축들만 우왕좌왕하는 무서운 유령 도시로 변 하였었다
.
이런 현상은 적도 평양 철수 때에도 대동강 철교 난간을 기어서 도강하는 탈 북 행렬을 찍은 기록 사진에서 여실히 볼 수가 있었다
.
북한 인구
1,200
여 만 명 중 거의
1/3
에 달하는
300
만 명 이상이
,
남하하는 국군을 따라 공산 독재에서 탈출 했다
.
치안유지 정도의 경 무장한 한국군은 소련제 탱크
,
중화기로 무장한 북괴군에게 속수무책으로
,
그대로 밀려
3
일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
한 달도 안돼 낙동강까지 후퇴하여 대한민국 존립이 촌 각을 다툴 때
,
미군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의 참전으로 한국이 간신히 소생 할 수 있었다
.
스탈린
–
모택동
–
김일성 식 적화를 막고
,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도약 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었다
.
그들은
,
전혀 알지도 듣지도 못한 나라와 국민을 돕기 위해
,
목숨을 아끼지 않고 치열하게 싸웠다
.
한국 전
3
년 동안 미군 연 인원
180
만 여명이 참전하여
, 5
만
4000
여명이 사망하고
, 12
만 여명이 부상
,
포로 또는 실종 되었다
.
그들의 막대한 희생이 우리 조국을 구해 주었고
,
현재 세계
13
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의 큰 동력 이었음을 누가 부인 할 수 있겠는가
?
기회가 오면 그 들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 해야 인간의 도리라는 부담감을 갖고 살아 왔다
.
우리교회 장로 한 분이 이번 현충일을 전후해서 인근에 생존 해 있는 한국 전 참전 용사들을 교회에 초대하여 그 당시 참전 용 투를 치하하고 감사의 예의를 표하는 것이 지역 봉사 차원에서도 좋지 않겠느냐는 제의에
,
목사님
,
장로님
,
제직 자 분들이 동의 하고 기꺼이 호스트가 되어
, 30
여 명의 참전 용사와 지역 귀빈 들를 초청하여
, 6
월
16
일 저녁에 아 콜 라 연합 감리교회에서 보은 만찬 모임을 갖게 되었다
.
초청인사 중에는 모친이 한국계인 뉴저지 주 상원의원인
Mr. Kevin O’Toole
과 그의 부친인
,
참전 용사
,
현
Cedar Grove
시장도 있었다
.
양국 국기 입장
,
경례에 이어
,
양국 국가를 이지영 양이
Solo
로 불으면서
,
식이 시작되었다
.
목사님의 환영사와 향군 지대장의 답사
, O’Toole
시장이 참전용사를 대표해서 당시의 상황에 대한 술회가 이어 지면서 분위기가 고조되어 갔다
.
여러 귀빈들의 축사가 뒤 따랐다
.
특히
, O’Toole
의원의 한국인 모친이 미국 정착 과정에서 겪었던 마음고생과 자식들을 훌륭하게 양육한 이야기를 약간 어눌한 한국말로 진솔하게 들려주었다
.
최 후진국
,
가장 가난 한 나라 출신
18
세 어린 처녀가 미국인과 결혼하여 인종차별이 심했던
50
년도 중반에 미국 지방 소도시에 신접 살림을 차렸다
.
주위는 물론
,
심지어 시집 식구들에게서 조차 냉대를 받았다니
,
그 어린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아 파겠는가
?
차별 심한 지방에서 쫓겨 나듯이 부부가 뉴저지로 이사와
, 7
남매를 낳고 모두 훌륭히 키워서
, O’Toole
집안을 상원의원
1
명
, 3
명의 시장을 배출 한 지방 명문가로 만들었다
.
남편의 흔들림 없는 사랑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 었다고 했다
.
대하 소설의 훌륭한 주제 같은 감동 실화였다
.
모두 자리를 잡고
,
여성 신도들이 손수 마련한 음식을 들면서 서로 추억담을 주고 받으며 즐거운 담소가 이어졌다
.
동시에 교회에서 잘 준비한 여흥 프로인
,
소프라노 독창
,
전통 무용 화관무
,
부채춤
,
독무가 차례대로 펼쳐질 때마다 탄성과 박수가 이여 졌다
.
특히 소프라노 이지영 양이 뉴 아리랑과 독일민요 두 곡을 맑고 뛰어난 성량으로 아름답게 불렀을 때는 천상 요정의 노래를 들은 듯 모두 기립하여 뜨거운 박수를 치며 앙코르를 연호했다
.
내 빈
5, 6
명이 자리 한
Table
마다 교회 제직 자 한 분씩 끼여 앉아
,
그들의 추억담을 듣고 질문도 하면서 분위기를 살리는 호스트 역할을 했다
.
참전 당시 그들의 나이는 대개
18-20
세로 고교 졸업 후 징집 되어 신병 훈련을 끝내자 마자 한국으로 파송 되었단다
.
사람들이 너무 낙후된 환경에서 가난하게 사는데 놀랬고
,
전장에 투입 되어서는 전투에 경험이 없는 신출 내기라 총알이 쉴 새 없이 귓전을 스치고
,
적의 포탄이 비오 듯 진지에 떨어 질 때는
“
이제 여기서 죽는 구나
”
하는 생각으로 기가 질려서 옴짝 달싹을 할 수가 없었단다
.
매일 죽음을 보았고 죽음이 내 곁에도 와 있다는 무서운 생각이 떠나지 않아
,
하나님에게
”
제발 살려 달라
“
고 간절히 기도하며
,
주님만을 꼭 잡고 하루 하루를 버티었다고 했다
.
특히 밤 중에 불어 닥치는 매서운 추위는 적의 총탄 보다 더 무서웠다
.
이런 공포의 나날을 보내며 전쟁 분위기에 익숙 해 저 갔단다
현재 한국의 기적 같은 발전상을 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고
,
그 당시 고생이 큰 보람으로 다가 온다고 했다
.
오히려 우리보다 더 기뻐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
한국인 이라면 그들의 은공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
.
이 행사가 일회로 그치는 줄 알았는데
,
목사님이 폐회사에서 매년 마련할 예정이니
,
내 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꼭 참석 해 달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놀랐다
.
거의 모든 교회가 해외 선교활동은 경쟁적으로 펼치며 중요 연례 행사로 주력하나
,
주위 보살핌은 피상적으로 모양만을 갖춰 단발적으로 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아프카니스탄 등지에서 어설픈 선교로 국민의 마음을 뒤집어 놓는 것보다 우선 주위를 둘러 보고 손길을 뻗치는 것을 일반 신도들이 선호 한다고 보며
,
그것이 신도들의 일반적 정서가 아닌가 생각 해 보았다
.
오늘 만찬은 가슴이 뿌듯한 감흥과 큰 보람을 느끼게 한 모임이었다
.
이번 행사를 주관한 아콜라 교회 목사님
,
장로님들 제직자 분들께 이런 흐뭇한 보은의 자리를 마련 해 주시고 이를 연례 행사로 결정 한 것에 감사를 드린다
.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울 준비가 되어있는 나라
,
미국 과 그 국민에게
, “ God Blessing America “
은 영원하리라
…

NJ
상
록 회
,
편집장
,
김 상 준
.











